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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얼마나 크고 오래되었을까?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해서 내놓은 숫자들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잘 와닿지 않는다.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 살면서 억, 조, 경 같은 숫자 단위를 체감해볼 수 있는 일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1조 초는 약 3만 2천년이다. 실감이 되는가? 그런데 천문학에서는 이보다 더 큰 숫자들이 예사로 사용된다. 아마 인류도 이 광활한 우주를 표현할 만한 마땅한 언어를 찾지 못해 ‘천문학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우주의 기나긴 시간을 우리가 사는 1년을 기준으로 압축하여 요약해본다면 어떨까?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1977년에 이처럼 우주를 요약한 달력이 있다(코스모스라는 유명한 책을 집필한 그 칼 세이건 맞다). 빅뱅이 일어난 시점을 1월 1일로 잡았을 때 우주는 어떤 역사를 거치며 생성되었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는 어디쯤에서 흘러가고 있는지 실감해볼 수 있는 방법이다.
1월 1일, 당시 우주는 전자, 중성자, 중성미자, 양성자, 광자가 자유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38만년이 지난 후 우주 온도가 내려가며 전자와 양성자가 결합하여 수소와 헬륨을 생성한다. 원자 없이 존재하던 에너지는 자정으로부터 14분 후 안정한 입자로 만들어졌다.
1월 10일 오후 2시,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오래된 은하 GN-z11이 생성된다. 실제 시간으로는 우주가 생기고 4억년이 흐른 뒤다.
1월 21일, 우리 은하에서 가장 오래된 항성이 태어났다. 이 시기에 태어난 1세대 항성들은 현재 몇 개 남지 않은 대신 중심핵을 구성하던 무거운 원소들이 흩어지며 우리 태양을 포함한 2세대 항성을 만들어지는 재료가 된다. 실제 시간으로는 우주가 시작되고 8억년 후의 일이다.
8월 31일, 실제로는 46억년 전, 우리의 태양이 생성된다. 위에서 설명한 1세대 항성에서 탄생한 불순물들은 태양으로 들어가지 않고 태양 주위에 커다란 먼지 원반을 형성했다. 그 원반에 회오리가 일어나면서 뭉쳐진 암석이 행성이 되었다.
9월 1일 정오, 우리가 사는 이 태양계가 형성되었다. 당연히 지구와 달이 생긴 것도 이때쯤이다. 아마 테이아라는 작은 행성이 지구와 충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충돌에서 나온 파편이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했고, 1억 년 후 파편들은 뭉쳐져 또 다른 구형 구조물이 되었는데 이게 바로 달이다.
9월 30일 늦은 저녁, 실제로는 약 10억년간 테이아와의 충돌 이후 아무 생명체도 없이 새까맣게 타 있던 있던 지구의 온도가 충분히 낮아졌다. 그로 인해 대기의 수증기가 바닷물로 응결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진흙 속에서 최초의 원시 생명체가 생겨났다. 어떻게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하게 되었는지는 아직까지도 과학계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12월 20일, 지구에 최초의 식물이 광합성을 시작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공룡이 등장하여 이 식물들을 먹어 치웠다.
12월 29일 공룡이 멸종한다. 상당히 싱거워 보이지만 공룡이 살았던 시간은 실제로 약 1억 7천만년이다.
그리고 12월 31일 자정 4분 전, 드디어 인류가 우주 역사에 등장한다. 학교에 다니는 내내 암기하느라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했던 세계사를 이 우주 달력에 집어넣어 보자. 1년의 마지막 날에 겨우 등장한 인류가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려고 한다. 10초에 인간은 수메르 지역 문명을 싹틔웠고, 9초에 피라미드를 건설했고, 5초에 아기 예수님이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 4초에는 로마가 무너지고, 3초에는 서유럽이 바이킹에게서 정복당했고, 2초에는 아시아를 정복한 칭기즈칸이 가장 큰 제국을 세운다. 마지막 1초,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고 마침내 자정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이다.
조금 더 앞으로 가보자. 우리는 이 우주 달력을 토대로 다음 1년간은 우리 태양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예측해볼 수 있다. 내년 1월 8일(실제로는 3억 년 뒤이다) 토성의 고리는 비가 되어 내리다 사라질 것이다. 아름다운 고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아쉬운 소식이지만, 대신 화성의 위성 포보스가 중력의 영향으로 깨지며 생성된 조각들이 화성을 중심으로 고리를 형성할 것이다. 마침내 우리 태양이 얼어붙으며 잔해가 전부 블랙펄이 되는 순간까지도 예상할 수 있지만, 서두에 말한 것처럼 우리가 결코 체감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인간이 우주에서 살아온 시간은 1년 중 4분에 지나지 않는다. 단 4분, 실제로는 20만년이나 되는 시간인데도 말이다. 인류의 역사만 봐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길고 복잡한데 이를 우주에 비교해서 봤을 땐 터무니 없을 정도로 짧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고, 사춘기를 겪고, 대학과 직장을 걱정하고, 중년의 위기 따위를 치열하게 고민하게 하기 위해 우주는 무수히 많은 소멸과 생성을 거치며 지금의 현재를 만들어왔다.
우주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이 실은 얼마나 작은지를 깨닫고 마음을 비우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창백한 푸른 점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하찮고 보잘것없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의 시간으로 내가 이 4여 분을 살 수 있게 되기까지 이를 위해 365일간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결합하고 폭발하여 사라졌다가 다시 탄생했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때 우리는 약간이나마 관점을 달리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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