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먼저 주전원이라는 가설이 있었다. 모든 행성이 고유한 원형 궤도를 따라 돌지만 동시에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코페르니쿠스라는 폴란드 학자가 반기를 든다. 코페르니쿠스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반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지구를 중심으로 행성들이 도는 것이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를 포함한 행성들이 궤도를 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으로는 독특한 역행 운동이 설명된다. 역행 운동이란 지구가 궤도를 따라 돌다가 때로 어떤 행성을 추월할 때 생긴다. 지구가 앞서고 있던 어떤 행성을 앞질러 가면, 지구에서 봤을 때 그 행성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코페르니쿠스는 의학과 법률을 공부한 사람이자 프롬보르크 성당의 참사회 위원이기도 했다. 아마 그가 이런 가설을 죽기 직전인 1543년에야 발표한 것은 태양중심설이 진리라고 믿던 16세기 유럽에서 이 급진적인 주장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잘 알았던 탓일지도 모른다. 성경을 배반한 이단으로 몰리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으니 아예 목숨이 위태로울 때 발표를 해버린 것이다. 그는 실제로 이 가설이 담긴 책을 발표하고 거의 바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당시엔 별다른 파장이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도 이 가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가 제시한 모델은 수학적으로 활용하기가 매우 쉬웠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 모델을 순수하게 계산 도구로만 사용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약식 계산에서는 지동설이라는 표준 접근법을 사용해야 측정값과 더 잘 맞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사망한 지 3년 후 튀코 브라헤라는 천문학자가 태어난다. 그는 흔히 과학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닮은 괴짜였다. 덴마크 귀족 집안이며 추밀고문관인 아버지를 따라 정치가가 되어야 했지만 과학자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 것부터가 그랬다.
그는 누구의 수학 공식이 옳은지를 놓고 싸우다가 검에 코를 베여 청동코를 붙이고 살기도 했다. 애완사슴을 어디든지 데리고 다니다가 이 사슴이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자 사슴이 술에 취해 그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무튼, 이 괴짜 천재 과학자 브라헤가 정작 본인은 이 체계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코페르니쿠스 체계가 발전하는 데 단단히 한몫을 했다.
브라헤는 프레데리크 왕이 물에 빠졌을 때 구한 공으로 벤 섬에 세워진 성을 받는다. 왕은 이 성에 개인 인쇄기, 천문대, 화학 실험실까지 구비해두었다. 이 섬에서 브라헤는 많은 천문학적 발견과 연구 결과를 이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요하네스 케플러와의 공동 연구도 진행했다.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식 접근법이 훨씬 우아하다고 생각하는 지지자였다.
브라헤와 케플러는 서로를 싫어했다. 케플러는 극도로 낯을 가리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하니 토론하다 검을 빼 들고 사슴에게 술을 먹이는 청동코의 사내와는 당연히 맞지 않았을 것 같다.
세간에는 케플러가 수은으로 브라헤를 독살했다는 설도 있지만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브라헤의 사망 후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을 증명하기 위해 케플러가 모든 데이터를 독일로 가져갔다는 것은 사실이다.
케플러는 마침내 코페르니쿠스 모델이 관측 데이터와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여기서 한가지 진실이 바로잡아지는데, 바로 행성은 원이 아닌 타원으로 공전한다는 사실이다.
궤도가 타원이라는 가정에 따라 태양중심설은 모든 면에서 잘 맞아떨어졌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1564년에 태어났다. 케플러가 태양중심설을 발표할 당시 30대가 되는 나이였다.
갈릴레오는 케플러에게 그를 지지하는 비밀스러운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의 이론에 동의하지만, 너무 두려워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1609년, 갈릴레오는 아랍권에서 발명된 기존 망원경을 20배 확대하여 볼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하여 하늘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이듬해인 1610년 9월, 갈릴레오는 아주 중요한 발견을 한다.
달의 위상은 태양이 다양한 각도로 표면을 비춰서 생긴 결과다. 이는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지동설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갈릴레오가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금성에도 위상 변화가 있었다.
금성의 위치 자체는 지구중심설로도 설명할 수 있으나 금성의 위상을 설명하려면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해야 하며 우리는 금성의 빛면과 그림자면이 변하는 현상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찰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가능케 하는 이론은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이 유일했다.
여태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무시하던 교회도 갈릴레오가 그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자 태도가 바뀌었다.
갈릴레오는 처음엔 로마를 찾아가 교회 당국에 코페르니쿠스 가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배짱도 보였다. 그러다 피렌체 지역으로 이주했을 때 종교재판에 회부되었다.
종교재판소는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가르치지도 말고 그 이론을 언급조차 하지 못하게 공식적으로 모든 것을 금지했다.
갈릴레오는 그의 친구 마페오 바르베리니가 교황으로 선출되면 상황이 나아지리라 기대하고 그때까진 숨죽여 살았지만, 새로운 교황이 된 친구도 종교재판소에 이미 내려진 결정을 바꿔주지 않았다.
열받은 갈릴레오는 이를 비꼬는 소설을 한 편 썼다. 소설의 주인공이 얼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에게 코페르니쿠스 이론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이 얼간이의 모티프는 누가 봐도 새로 선출된 교황이었다. 이는 명백히 교황과 성경에 대한 모욕이었다. 종교재판소는 당연히 이 소설도 금지하고 그를 다시 종교재판에 회부했다.
갈릴레오는 신념을 위해 재판소의 처분에 저항했다. 그러나 교회가 고문 장치를 보여준 순간 유순해져 머릿속에 가득 찼던 오만함을 비웠다고 고백하며 용서를 빈다. 매우 인간적인 대목이다. 죽을 때까지 가택연금 하라는 지시에도 순순히 따른다.
이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갈릴레오 재판의 재개를 요청하고 당시 교회가 사건을 잘못 처리했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337년이었다.
아주 미묘한 관찰 결과라 해도 기존에 정립된 이론을 모조리 몰락시킬 수도 있다. 이것이 과학의 재밌는 점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요즘엔 모든 이론을 뒤엎는 새 이론이 나타난다 해도 소송이나 고문 장치로 위협을 당하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인터넷에서 온갖 비난과 지난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천문학 물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아인슈타인은 정말 틀렸던 걸까? (0) | 2023.06.08 |
---|---|
일반상대성이론 쉽게! 대강! 이해해보기 (0) | 2023.06.07 |
빅뱅이론에도 의문점은 있다 (0) | 2023.06.07 |
명왕성은 ‘강등’된 게 아니다? (0) | 2023.06.07 |
칼 세이건의 우주 달력, 우주의 역사를 실감해보는 방법 (0) | 2023.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