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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국제천문학연맹이 충격적인 발표를 한다. 앞으로 명왕성은 행성이 아니며 왜행성으로 분류된다는 내용이었다.

큰 파장이 일었고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은 분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책임자 마이크 브라운의 트위터 계정 아이디는 플루토 킬러, 즉 명왕성 살인마였다. 게다가 계정의 헤더 사진은 스타워즈에서 얼데란이라는 행성이 죽음의 별에 의해 파괴당하는 장면이었다.

의도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해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민주주의가 곧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수 의견을 존중하되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예를 들어 해가 서쪽에서 떠서 동쪽에서 지는 거라고 다수가 결정했다 해도 그것이 사실은 아니라는 말이다.

전에 쓴 지동설과 천동설의 내용만 봐도 그렇다. 절대다수가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돈다 믿었어도 그게 사실은 아니었다. 따라서 여론이 진실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단어의 의미를 정한다. 많은 사람이 명왕성을 행성이라 정의하고 싶어 한다면, 그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이번엔 그렇지 않다.

그리고 국제천문학연맹(이하 IAU)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단순한 트롤링으로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대중들의 여론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고, 대중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이 같은 재분류 결정을 내렸다. 왜 그럴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행성이라는 단어가 시작된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자.

행성에게 부여된 최초의 정의는 하늘에서 빛나는 다섯 개의 이상한 빛이었다. 그러다 태양 곁을 도는 여섯 개의 세계가 있고 우리 지구는 그중 하나였다는 것을 르네상스 끝 무렵에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리하여 행성에는 좀 더 섬세한 의미가 생긴다. ‘태양 주위를 도는 물체라는 정의였다.

 

1781, 윌리엄 허셜이라는 사람이 최초로 행성을 발견한다.

그는 이전에 항성인 줄 알았던, 밤에 희미하게 빛을 내던 물체 하나가 역행하는 현상을 관측한다. 그렇게 행성은 일곱 개가 되었다.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그리고 허셜이 발견한 조지.

영국 왕 조지를 기리기 위한 이름이었으나 프랑스에서 이를 거부하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의 이름을 딴다. 우라노스, 우리말로는 천왕성이다.

 

1801, 케레스라는 여덟 번째 행성이 발견된다. 주세페 피아치라는 사람이 발견했으며 이 행성은 목성과 화성 사이에 숨어있었다.

몇 달 후 하인리히 올베르스가 케레스와 동일한 궤도로 움직이는 행성을 발견한다. 이 아홉 번째 행성의 이름은 팔라스가 되었다.

 

1804, 카를 하딩이 행성 주노를 발견한다.

1807, 하인리히 올베르스가 행성 베스타를 발견한다.

1845, 카를 헨케가 행성 아스트라이아를 발견한다.

 

이다음의 행성은 특별하다. 망원경이 아닌 방정식으로 발견한 최초의 행성이기 때문이다.

이 행성이 발견되기 수십 년 전 알렉시 부바르가 하나의 실마리를 잡는다. 천왕성을 측정하다가 천왕성이 완벽한 타원 궤도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마치 중력으로 잡아끄는 다른 행성이 주위에 있는 것처럼 천왕성은 묘하게 한쪽으로 당겨졌다.

그리고 수십 년 뒤 요한 갈레가 13번째 행성, 해왕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행성은 계속 발견되고 발견되었다. 1860년대의 천문학 서적에는 열일곱개의 행성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과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망원경의 성능도 점점 개선 되었고, 사람들은 화성과 목성 사이에 생각보다도 더 많은 행성이 공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그 수는 수백개에 달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행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사람들은 어떤 것을 떠올릴까?

커다란 구형의 우주 물체가 외롭게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관측된 것처럼 우주에서 일어난 자잘한 보푸라기들이 태양을 끈처럼 둘러싼 형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정을 해야 했다. 행성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태양 주위를 도는 물체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용과 실제 의미를 일치시킬 것인가?

사람들은 후자를 따르기로 하고 대신 소행성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도입하여 화성과 목성 사이의 별들을 총칭하기로 했다.

 

1930, 드디어 명왕성이 포착되었다(참고로 명왕성이라는 이름은 11세 어린이의 제안이 투표로 채택된 것이다).

그런데 1948년 더욱 정교하게 측정한 결과 지구만하다고 여겼던 명왕성의 크기가 실제론 지구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래도 여전히 행성 범위 안에 간신히 있긴 했다.

그러나 1978년 명왕성의 실제 질량도 지구의 600분의 1이며 크기는 달보다도 작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후 세드나, 하우메아, 오르쿠스, 마케마케, 에리스 등 명왕성 근처를 떠도는 더 많은 물체가 발견됐다. 해왕성 너머로는 2천개가 넘는 물체가 우주를 떠다니고 있었고, 명왕성은 그저 그중 하나였다.

말하자면 명왕성은 사람들이 행성을 생각할 때 그리는 물체가 아닌 하나의 뚱뚱한 소행성이었다.

 

명왕성을 위해 행성이란 단어를 재정의해버리면 태양계의 다른 무수히 많은 소행성의 지위도 갑자기 행성으로 올라가게 된다.

명왕성이 왜 행성이 아니냐고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사라지겠지만, 대신 케레스가 어떻게 행성이냐!’ 같은 불만이 새롭게 쏟아진다는 뜻이다.

 

행성이란 1. 태양 주위를 돌고 2. 중력으로 구를 형성할 만큼 무거워야 하며, 3. 공전하는 궤도에 반드시 그 물체 하나만 있어야 한다.

앞의 두 조건에 해당하는 물체로 케레스, 명왕성, 에리스, 하우메아, 마케마케 등이 왜행성으로 분류된다.

 

그러니 명왕성은 불명예스럽게 강등당했다기보다도, 우리가 또 다른 진실을 발견했을 뿐이라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하지만 기존에 밝혀졌던 것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기도 한다. 그것 또한 과학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