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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지어스와 윌슨이 우주 마이크로파 배경, CMB를 발견함으로 빅뱅은 이론등급으로 격상되었다.

하지만 유리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게 끝이 아니며 이것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도 못한다. 과학자들은 하나의 이론을 내놓는 즉시 그 이론의 약점을 방어하는 설명까지 내놓아야 한다.

 

현재 빅뱅이론에서 설명하기 곤란한 문제 몇 가지가 있다.

 

 

지평선 문제

CMB가 우주에서 실제로 관찰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은 곧 그것이 가장 멀리 있는 존재라는 뜻도 된다. 우주론에서는 가장 오래된 존재가 가장 멀리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우리는 빛을 통해 사물을 본다. 그런데 이 빛이 우리에게까지 닿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있다.

멀리 있는 물체를 볼 때 우리는 그걸 보는 지금의 모습이 아닌, 빛이 떠났을 당시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달조차도 실시간으로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달이 1 광 초만큼 지구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달빛이 지구에 오기까진 1초가 걸리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며 사물을 보는 모든 순간 일어난다. 하지만 빛의 이동속도가 엄청나게, 무시가 가능할 정도로 짧기 때문에 우리는 사건이 보는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찰나의 시간 지연을 거쳐 우리는 세상을 인식하고 있다.

 

아무튼.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CMB에는 그것이 생성되던 당시의 온도가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우주의 모든 곳에서 이 온도가 같다는 문제가 확인되었다. 이게 왜 문제인가?

팽창이 일어난 후 온도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르내리게 된다. 그런데 38만 년은 우주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모든 곳이 온도가 균일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다. 우주의 양 끝은 각자의 자리에서 볼 때 지평선 너머이므로, 이 문제를 지평선 문제라 이름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던 상황에서 어떻게 우주 전체가 비슷한 온도에 도달했을까?

CMB가 형성된 시점에서 온도가 균일해야 한다면, 빅뱅 팽창 훨씬 이전에 우주가 시작되어야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앨런 구스가 급팽창 가설이란 것을 세운다. 팽창이 점진적으로 서서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빅뱅이 시작된 지점에서 급박하게 일어났다는 내용이다.

팽창이 일어난 첫 1조분의 1 곱하기 1조분의 1 곱하기 1조분의 1초에, 변동은 아주 미세하여 한 점에 담길 수 있으므로 온도는 어디서나 같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냄비에 물을 끓이면 수면에서 거품이 일지만, 만약 손톱만 한 냄비에 물을 긇인다면 양이 너무 적어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빅뱅은 시작되었지만 우주가 균일한 상태에서 온도가 변동할 틈도 주지 않고 급박한 팽창이 일어났다면 우주 전체는 같은 온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급팽창도 많은 의문이 뒤따른다. 급팽창은 무엇이 일으켰는가? 그리고 왜 멈추었는가?

2014년에 남극의 한 연구팀이 급팽창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해서 잠시 소동이 일었던 적은 있지만, 확인 결과 그것은 그냥 우주먼지였다. 이러한 이유로 급팽창은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주의 바깥

우주가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상관없이 아직도 많은 의문이 남는다. 대체 우리 우주가 팽창해가고 있는 이 차원 안에는 무엇이 존재하는 걸까?

정직한 대답을 내놓자면, 우리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주 특이점은 어떤 것과 비교해도 다르기 때문에(특이점이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아무리 적절한 단어를 쓴다 해도 우주 바깥에 대해 표현하기는 힘들다.

 

시간은 우주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우리가 만약 우주가 아닌 어떤 장소를 이야기한다면, 그곳은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이야기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주 바깥으로 나가거나 특이점보다 더 먼 과거로 돌아가기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해 오랜 기간 갖가지 신화와 은유적인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서 답을 제시했다. 고대의 창조 신화에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나와 우주가 샘솟는 알을 낳지만 시간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은 회피한다.

중국 철학서도 시작은 텅 비어있는 공간에서 출발하나 여기서 어떻게 공허함과 모순되는 생명의 근본이 태어났는지는 잘 언급하지 않는다.

 

물리학도 똑같은 문제에 당면하고 있다. 빅뱅으로 인해 시공간이 탄생 되었다면 그 이전엔 시공간이 없었으므로 시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이 말 자체에도 어폐가 있는데,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있었다없었다같은 과거 시제를 쓰는 것도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 ‘있었다’, ‘없었다자체가 어느 특정한 시간을 전제하니까. 하지만 특이점은 그렇지 않다.

 

특이점 때문에 혼란스러워지는 것은 방정식뿐만이 아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언어 또한 와해된다.

대체 무엇이, 혹은 누가 우주를 탄생시켰고 우주가 어디에서 왔는지 묻는 행동은 알파벳 A 앞엔 어떤 글자가 오냐고 묻는 행위이다.

세 가지 경우가 있다. A 앞에 오는 새로운 글자를 만들거나, A에서 Z로 되돌아간다고 하거나, A 앞에는 어떤 글자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현재 시점으로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오직 우주가 존재하며 지금 인간의 수준으로 설명 가능한 시점은 아주 먼 과거라는 것뿐이다. 여기서 더 깊게 파고드는 것은 어쩌면 과학의 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

 

과학은 어찌 되었든 자연 세계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연이 어떻게 출발했는가에 대한 답은 초자연적인 답을 구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다.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신학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고대에는 과학자인 동시에 철학가인 지식인들이 많았던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스티븐 호킹은 특이점 이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과법칙이 필요 없으며, 우주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대척점에 서 있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윌리엄 크레이그는 시간이 우주에서 시작되었다면 시간 자체에 초월적인 원인이 있는 거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초월적인 원인이란, 당연히 신을 말한다.

 

이 거대한 우주의 탄생을 초월적 존재()로 설명하는 게 맞는지 틀리는지는 철저하게 당신의 판단에 따른다. 과학은 창조주를 증명하지도 반증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우주의 탄생을 탐구하는 일에는 아직 밝혀내지 못한 초자연적인 것과 철학이 얽혀있다. 특정한 종교를 전파하려는 것이 아니다(그런 의도에서 그냥 '신'이라 칭했다). 말하고 싶은 것은 깊이 고민해보지도 않고 신에 대해 받아들이거나 무시하는 것은 둘 다 그다지 과학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탐구하고 사고하는 것이 중요하다.